[기획기사] 묵직한 신인 감독 등장, 영화 ‘잠’ 유재선 감독

카테고리 루키 | 어썸
작성자 hookmeup
작성일 2022-11-30
 
[1st 인터뷰] 영화 <잠> 유재선 감독

묵직하고 이상한 신인 감독 등장

 

영화 <잠>은 유재선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정유미와 이선균이 부부로 재회한다는 소식에 촬영 당시부터 화제가 됐다. 지난 10월, 영화 <잠>의 후반 작업에 한창인 유재선 감독을 만났다. 환하게 웃으며 인사를 건네는 모습은 마냥 사람 좋은 인상이었으나, 인터뷰를 끝낸 후 알아차렸다. 주어진 상황을 200% 활용할 줄 아는 영리한 감독이라는 것을.

 

먼저 첫 장편 영화 입봉을 축하드립니다. 영화 <>은 언제쯤 개봉 예정인가요?

감사합니다. 아직 정확한 개봉 날짜는 정해지지 않았지만, 남은 시간 동안 후반 작업에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촬영을 지난 4월에 끝난 걸로 알고 있어요. 첫 장편 영화 개봉을 앞두고 있는 소감이 궁금합니다.

아직 후반 작업을 열심히 하고 있어서 크게 실감하지는 못하고 있어요. 많은 감독님이 ‘후반 작업이 가장 괴롭다’는 얘기를 하셨거든요. 촬영에서 충분히 계획대로 펼치지 못한 결과물을 가지고, 최대한 심폐소생 시키는 과정이라고요.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이해가 가더라고요. 한 샷(shot), 한 샷(shot)을 어떻게 하면 더 나은 방향으로 발전시킬 수 있을지에 집중하고 있어요.

 

잠 보도자료 2

영화 <잠> 포스터

 

영화 <>에 대해 간단히 소개를 부탁드려요.

신혼부부 수진과 현수가 주인공인데, 어느 날부터 갑자기 남편 현수가 잠들면 마치 딴 사람처럼 이상한 행동을 하게 돼요. 처음엔 가볍게 넘겼는데 점점 증상이 심각해지면서 행복한 신혼부부의 삶이 악몽같이 변하게 되고, 이런 끔찍한 공포의 비밀을 풀기 위해 애쓰는 두 사람의 대한 이야기입니다.

 

어릴 때부터 영화에 관심이 많은 편이었나요?

많지 않았습니다. 본격적으로 영화 제작에 관심을 두게 된 건 군대 다녀와서 부터에요. 그러다 보니 어린 나이부터 영화를 좋아해서 즐겨보고, 박학다식한 소위 시네필(Cinephile)이라고 하는 주변 친구들을 보면 부럽습니다. 영화학과를 나온 선배나 동기들보다 영화적 지식이나 경험이 많이 부족하다고 느끼기 때문에 틈틈이 영화도 많이 보고, 관련 서적들도 찾아 읽으면서 따라잡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그렇다면 언제부터 영화에 관심을 갖게 되셨나요?

군대에서요. 그전까지는 재미있다고 소문난 상업 영화 위주로 보러 다니는 정도였죠. 그런데 입대하기 전에 교양수업에서 단편 소설을 쓰게 됐는데, 그 과정이 너무 신선하고 재미있는 거예요. 그때부터 창작하는 일에 흥미를 느꼈고, 군대에서 본의 아니게 영화를 굉장히 많이 보게 되면서,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진지하게 갖게 됐어요.

 

유재선 감독 4

 

대학교 졸업 전에 영화 <은밀하게 위대하게>(2013)를 통해 영화 일을 시작하셨죠?

처음 제 알량한 계획은 ‘복학한 다음 영화 동아리에 들어가서 잔뜩 배우자’였어요. (웃음) 그런데 군대 선임의 지인이 연출팀 막내를 구한다며 한번 지원해보라고 하더라고요. 곧장 지원해서 되긴 했는데, 끝까지 완주는 못 했어요. 허리를 심하게 다쳐서 중간에 그만둬야 했거든요. 그래도 이때 만났던 분들이 제가 존경하는 감독님, 선배님들이라 좋은 기회였다고 생각해요.

 

2014년에 제작한 단편영화 <영상 편지>가 첫 작품이죠? 41회 서울독립영화제」, 20회 인디포럼에서 상영도 됐어요.

<영상편지>를 찍은 경험은 제 머릿속에서 가장 미화된 추억이에요. 제작비가 빠듯해서 가족, 친구들을 동원해 출연시키고, 하루 같이 노는 느낌으로 즐겁게 찍었거든요. 혼자 제작한 건 아니었고, 학교 영화 제작 동아리에서 만든 영화예요. 동아리에서 학기마다 단편 영화를 만들어 영화제에 출품했는데, 스크린으로 상영된 건 처음이라 다들 엄청 놀라고 기뻐했던 기억이 나요. <영상편지>를 지금도 기억해주는 분들이 있어서 너무 감사하죠.

 

영상편지 스틸컷 3

영화 <영상편지>

 

졸업하고 나서는 바로 봉준호 감독의 <옥자> 연출팀으로 합류했어요.

저한테는 행운이었죠. <옥자>는 사실 외국영화잖아요. <은밀하게 위대하게>의 짧은 경험도 중요했지만, 결정적으로 외국에 살다 온 경험 덕분에 합류할 수 있었습니다. 촬영 현장에서 외국 배우 및 스태프와 소통이 가능한 스태프를 많이 채용해서 저한테까지 기회가 왔죠. 연출팀 막내로서 프리 프로덕션 단계부터 후반 작업까지 제작 과정 전체에 참여했고, 영화 프로모션 활동 시에도 봉준호 감독님의 통역으로 동행했어요. 아마 옥자 스태프 중 가장 오랜 기간 참여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신인 감독으로서 영향을 많이 받았을 것 같은데 어떤가요?

솔직히 <옥자> 연출팀에 있을 때는 하루하루가 정신이 없어서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 실감하지 못했어요. 그런데 <잠>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감독님의 촬영 방식 등을 저도 모르게 따라 하려고 노력하고 있더라고요. 사운드 믹싱할 때도 마찬가지였는데, 그때 ‘아, 감독님으로부터 배운 것이 많구나’’라고 느꼈어요.

 

유재선 프로필 사진 1

촬영 현장에서

 

2018년에는 단편영화 <부탁>으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대단한 단편영화제에서 상도 받으셨어요. 저도 최근에 봤는데, 아빠와 아들의 찰진 티키타카 때문에 455초부터 계속 피식피식 웃게 되더라고요.

<부탁>은 부자간의 대화가 전부인 단편인 만큼 대사가 중요했어요. 저는 대사를 쓸 때 멋지거나 감동적인 대사보다는 상황 속에서 실제로 할법한 대사를 써야 한다는 강박감이 약간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대사를 쓰고 난 후 육성으로 읽어보고, 이것이 정말 현실에서 사용할만한 말인지, 캐릭터와는 어울리는지, 심리를 잘 표현하고 있는지 여러 번 확인하는 편이에요.

 

부탁 스틸컷 2

영화 <부탁>

 

영화 <>의 대사도 궁금하네요. 촬영하며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나 장면을 꼽는다면요?

어떤 한 장면을 얘기하긴 어려울 것 같고, 두 주인공이 주고받는 연기 호흡이 최고였다고 생각합니다. 수진 역은 정유미 배우가, 현수 역은 이선균 배우가 맡아줬는데, ‘두 사람의 연기 때문에 살았다’라는 생각을 여러 번 했어요. (웃음) 수진이 외부로 발산하는 연기라면, 현수는 내부로 수렴하는 연기를 보여줘야 했기 때문에 요구하는 연기의 결이 서로 달랐거든요. 그런데 두 분 다 놀랍도록 완벽하게 연기해내는 거예요. 두 분의 연기를 보는 재미에 촬영 내내 즐거웠습니다.

 

배우들 이름만 들어도 기대가 되는데요. 두 분은 어떻게 캐스팅하게 된 건가요?

제작사와 캐스팅을 논의하던 중, 정유미 배우님이 ‘수진’ 역을, 이선균 배우님이 ‘현수’ 역을 맡아주시면 얼마나 좋을까 싶어서 시나리오를 드렸습니다. 다행히도 두 분 모두 시나리오를 마음에 들어 하시고 저를 만나고 싶어 하셨어요. 좋은 기회다 싶어서 만나는 날 <잠>이 무슨 영화인지, 두 분이 왜 이 영화에 참여해야 하는지, 신인 감독으로서 <잠>을 어떻게 만들 계획인지 열심히 설명해 드렸어요. 시나리오를 비롯한 그러한 일련의 노력을 긍정적으로 생각해주셨던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잠 보도자료 3

영화 <잠> 주연 배우들(이선균, 정유미)와 함께

 

영화 <>을 통해 관객들에게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나요?

저는 <잠>이 사랑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시나리오를 썼을 당시에도 제 일상 속 화두가 ‘결혼’이었죠. 그래서 부부를 주인공으로 설정했던 것 같아요. 보통 결혼생활을 다루는 영화들은 주된 갈등의 이유가 서로한테 있잖아요? 누군가 큰 실수를 저지른다든지, 싸움이 잦아진다든지, 시간이 지나면서 애정이 식는다든지요. 저는 그런 문제를 그리고 싶지 않았어요. 오히려 서로를 믿고, 응원하고, 사랑하는, 단짝 같은 부부를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이들에게 누구의 탓도 아닌 ‘역대급 시련’을 던져놓고, 부부로서 이를 어떻게 헤쳐나가는지 그리고 싶었어요. 부부든 연인이든 장애물과 시련을 끊임없이 맞이하잖아요. 이러한 문제들을 어떤 자세로 임하는 것이 옳은 걸지 많이 고민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이러한 의도를 관객 분들이 꼭 인지해야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잠>을 만들 때 제 마음속 우선순위는 장르적 재미를 충분히 살린 영화를 만드는 것이었거든요. 영화가 상영되는 동안 관객 분들이 ‘재미있게’ 몰입해서 볼 수 있다면 그걸로 만족할 것 같습니다.

 

닮고 싶거나, 좋아하는 감독은 누구인가요?

미국의 데이비드 오 러셀 감독이요. 작품 중에서는 <파이터>, <아메리칸 허슬>,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을 정말 좋아해요. 데이비드 오 러셀 감독의 영화들은 장르나 소재와 상관없이 관객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드는 뭔가가 있어요. 저도 영화를 만들 때 그런 따뜻한 시선을 유지하고 싶어요.

 

영화 파이터

영화 <파이터>, movie.naver.com

 

그럼 내 인생 최고의 영화를 꼽자면요?

인생 최고의 영화 한 편을 고르는 건 불가능하겠지만, 일 년에 한 번씩 챙겨 보는 영화들이 있어요. <좋은 친구들>(감독 마틴 스코세이지),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감독 에단 코엔, 조엘 코엔), <데어 윌 비 블러드>(감독 폴 토마스 앤더슨) 등이요. 봉준호 감독님의 영화들도 정말 좋아하고, 틈틈이 재관람합니다.

 

올해가 얼마 남지 않았는데요. 앞으로의 계획이나 차기작 준비가 궁금합니다.

주위에서는 ‘지금이 다음 시나리오를 써야 할 때’라고 하는데, <잠> 후반작업이 완전히 끝날 때까지는 여기에만 몰두하려고 해요. 그러나 올해가 지나가기 전에는 차기작 시나리오를 한 편 쓰는 것이 목표입니다.

 

마지막으로, 앞으로 어떤 영화감독이 되고 싶은가요?

전반전을 잘 준비해서 후반 작업에 많이 의지하지 않는 감독이 되고 싶어요. 제작 단계별로 원하는 그림에 차근차근 근접하는 것이 영화의 완성도를 높이는 핵심이라고 생각해서요. 또 미술이나 촬영 등 영화 제작 요소 전반에 대한 내공을 더 쌓으려고 해요. 미술 감독님이나 촬영 감독님보다 그 분야를 더 잘하긴 어렵겠지만, 좀 더 제가 원하는 방향으로 결과물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실력이 생길 테니까요.  훅미업 끝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