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직업의 세계] “배우 쉬운 일 아닙니다”
오직 훅미업에서!
수십 년의 작품 활동으로 배우계의 정상에 선, 명불허전 이기영 배우를 만났다.
화면 너머로 누구나 매일 접하는 직업이기에, 너도나도 부푼 꿈을 안고 쉽게 들어서는 배우의 길.
이에 이기영 배우는 더없이 현실적이고 날카로운 경고를 남긴다. 무언가를 바라고 배우를 꿈꾼다면, 이 길은 당신의 길이 아니라고.
오로지 무대에 서는 것만으로 가슴이 뛰는 사람들이, ‘뼈를 깎는’ 노력까지 기울이게 될 때 비로소 문이 열린다고.
‘배우에 도전해도 되는 자’는 누구일까. 인터뷰를 통해 확인해보자.
[배우를 꿈꾸는 당신]
– 배우님 안녕하세요, 저는 이번 인터뷰를 진행하게 된 고려대학교 미디어학부 20학번 정찬웅이라고 합니다. 학생들에게 간단하게 인사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배우 이기영입니다. 오늘 인터뷰가 배우를 꿈꾸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 이기영 배우님이 생각하시는 배우란 무엇인가요?
흔히들 배우를 연기자라고 부르시곤 하는데, 전 개인적으로 그 표현을 별로 안 좋아해요. 배우는 절대 연기만 하는 직업이 아니거든요. 배우는 뭐랄까요, 세상에 없던 사람을 빚어내는 일을 해요. 외형, 성격, 취향, 살아온 배경까지…
그래서 매우 가슴 뛰는 일이죠. 세상에 없던 새로운 사람으로 살아보는 거잖아요. 영웅이 되기도 하고. 현실에는 없는 꿈 같은 사랑도 하고. 그러면서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 위안까지 줄 수 있으니, 엄청난 일이죠.
– 배우님이 생각하시는 배우라는 직업의 좋은 점이 무엇일까요?
가치 기준에 따라 다를 것 같은데요. 그래도 장점이라고 하면, 인지도가 높아지면 참 좋아요. 길에서 마주치는 사람마다 눈에서 꿀이 떨어지고, 식당에 가면 사장님이 반찬이라도 하나 더 주거든요.(웃음) 모르는 분들한테 어딜 가나 사랑받는 직업이 또 어디 있겠어요.
– 그렇다면 단점은요?
반대로 인지도가 낮을 때죠. 이 일이 너무 좋은데 나를 찾는 곳이 없다는 건 엄청난 고통이에요. 요즘은 알다시피 이쪽 산업이 포화 상태라 경쟁이 더 심해졌는데, 이곳에서 알아주는 배우로 살아남는다는 건 하늘의 별 따기 수준입니다. 그게 단점이겠네요.
– 배우를 꿈꾸는 학생들이 꼭 생각해 봐야 할 게 있나요? 현실적인 말씀 부탁드려요.
혹시 유명세, 경제적 풍요, 멋지고 화려한 삶… 이런 걸 바라고 배우를 꿈꾸시나요? 그러면 정말 위험합니다. 배우는요, 정말 무대에 서는 것만으로 좋아서 미치는 사람들만 해야 하는 일이에요. 그게 아니라면 다른 길을 고민해보세요. 이건 이 인터뷰 모든 이야기의 가장 중요한 전제입니다.
– 그렇게 말씀하시는 이유는요?
이 일을 온전히 좋아하지 않는 상태에서 시작했다가는 정말 애매해져요. 실제로 ‘도전하지 말걸’이라는 후회를 정말 많이 하거든요. 나름 이 일을 좋아한다고 생각해서 이 일을 하며 20대를 보냈는데, 결국 배우로서 자리를 못 잡으면 그때부터는 이도 저도 아니고 완전 멘붕인 거죠. 이게 여러분의 이야기일 수 있다는 걸 명심하세요.
– 배우에 도전하려는 사람들이 생계유지에 대한 고민도 많이 하는 것 같아요. 훌륭한 배우들도 어려웠던 과거에 대해 말하기도 하고요. 배우를 하려면 배고픔은 필수인가요?
이쪽 환경은 다른 직장과는 다르게 기본급이라고 할 것 없고, 선택받지 못하면 도태될 수밖에 없는 세계예요. 그 말은 뭐냐, 본인이 정말 좋아하고 노력하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굶게 되는 거죠.
그게 걱정되시면 이 일을 하시면 안 돼요. 왜, 밤늦게까지 배고픈 줄도 모르고 공놀이하는 동네 꼬맹이들 있잖아요. 그 아이들은 공 차는 거 말고는 눈에 들어오는 게 아예 없죠. 그 정도로 진심이어야만 성공할 수 있습니다.
– 배우님처럼 잘하는 배우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해요?
잘하는 배우가 쉽게 된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정말 많은데, 큰일 날 오해입니다. 배우로서 잘하려면 국가대표 선수들이 하는 훈련 이상으로 정말 ‘뼈를 깎는’ 노력을 해야 해요. 게다가 연기는 종합 예술이라서 모든 걸 신경 써야 하니, 보통 일이 아닌 거죠.
– 예를 몇 가지만 들어주신다면?
음.. 너무 많은데요. 우선 연기 측면에서는 작품과 연기에 대한 연구는 너무 당연하고, 최근 연출의 트렌드도 읽어야 해요. 화면으로 보는 직업이기 때문에 비주얼, 표정, 발성, 신체 기능 관리, 하다못해 흡연과 음주까지 신경 써야 하고요. 또 배우는 멘탈 관리가 생명이라, 그러려면 독서도 최소 1주일에 한 권씩은 해야 요. 후.. 말하다 보니 숨차네요. 근데 여기까진 완전 기본 중 기본이에요. ‘설마 이 정도까지 해야 해?’ 그 이상으로 해야 합니다. 엄청나죠?
[이기영, 배우로 살아보니]
– 배우가 보통 일이 아니군요. 이제 이기영 배우님의 이야기로 넘어가 볼게요. 배우가 되신 계기가 궁금해요.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게 늘 좋아서 어려서부터 연극반 활동을 했어요. 근데 그렇다고 평생을 배우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은 안 해봤죠. 그러다 고2 때 보게 된 연극이 완전 결정타였어요. 배우 한 명이 혼자 힘으로 무대를 끌고 나가는 게 너무 멋져 보이고 막 가슴이 뛰더라고요. 그때 결심했죠. 난 이 일을 해야겠다고.

출처 네이버영화 ‘말아톤’

출처 이기영배우 페이스북
– 배우로서 첫 작품은 무엇이었나요?
1984년도 연극 리어왕에서 광대 무리 막내 역할로 데뷔했어요. 기타치고 드럼치고 정말 별의별 일을 다 하는 역할이었죠.
– 기분이 어떠셨어요?
그냥 무대에 설 수 있다는 것 자체로 너무 행복했어요. 객석에서 터져 나오는 박수와 함성도 다 저를 향하는 것 같고. 엄청난 카타르시스였어요.
– 아까 배우라는 직업의 장단점을 말씀해 주셨는데요. 현재의 대배우 ‘이기영’으로서는 장점이 더 많을 것 같아요.
이 일에 대한 감사함이 날로 커지는 거죠.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경제적으로나 정서적으로나 제 사람들을 챙길 수 있다는 것이 가장 감사해요. 그럴수록 이 일에 더 마음을 다하고, 몰입하게 되고요. 단순해 보여도 이게 현재 배우로서 저를 살아가게 하는 가장 큰 원동력인 것 같아요.

출처 SBS
– 단점도 있을까요?
단점이라기보다는, 더 신경 써야 할 게 많이 생기는 거죠.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처럼, 받는 사랑이 커지는 만큼 더욱더 노력해야 하니까요.

출처 SBS
– 괜히 대배우님이 아니시군요. 마지막으로 배우를 꿈꾸는 학생들에게 해주시고 싶은 말씀이 있나요?
배우가 참 매력적으로 보이긴 하죠. 근데 쉽게 생각하면 큰일 납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본인이 무대에 서는 것만으로 순수하게 가슴이 뛰는지부터 확인해보세요. 그리고 뼈를 깎는 노력을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해 나갈 자신이 있는지도요. 이 모든 조건을 만족한다면 도전해봐도 좋습니다. 무대에서 느낄 전율과 카타르시스, 그 한순간을 바라보고요. 그러면 충분히 성공할 수 있을 겁니다. 만약 배우가 되어 현장에서 나를 본다면 얘기해요. 내가 맛있는 밥 한 끼 사드릴게.(웃음)
넘볼 수 없는 아우라를 가진 이기영 배우와의 인터뷰를 마쳤다.
배우의 길 정상에 서 있는 그가 직접 전하는 진솔하고 현실적인 이야기들. 평소에 가볍게 생각하고 있던 부분까지 따끔하게 꼬집어 주셔서 더욱 울림이 깊었다.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들을 수 없는 진짜 배우의 이야기, 독자 여러분의 더 나은 미래에 많은 도움이 되길 바란다.
정찬웅 크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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